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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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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충과 뽕나무 골목. 조선조정은 임진왜란 직후 경상감영을 달성공원에서 두사충의 세거지로 옮기게 된다. 두사충은 대구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였다. 조정은 계산동 4천여평의 땅을 그에게 대신주었고 이땅에 두사충은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며 살았다. 그때 다니던 길이 세월이 흘러 골목으로 변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골목들을 뽕나무골목이라고 부르게 된것이다.
찾아오시는길 성밖골목 남쪽 일대, 계산성당 후문 일대
둘러보기 서병조집터, 이상화고택, 이상정고택, 서상돈 고택집터, 붉은 벽돌골목, 두사충 옛집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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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조 집터_대륜재단의 초대 이사장

구 고려예식장이 그의 저택 터였다. 집이 운치가 있어 6.25 직후 지역 요인들과 미군 장교들의 가든파티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고려예식장 우씨 형제들은 예식장 건축과정에서 나온 홍송과 돌, 목재가 워낙 좋아서 현재 송현 아파트 근처 월곡공원옆 단양 우씨 재실격인 '낙동서원' 부속재로 활용했다고 한다.


이상정 고택_ 대구최초 서양화가이자 독립운동가

시인 이상화의 형이다. 계산문화회관 바로 옆 한옥이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였다.

이상화 고택

민족시인 이상화가 39년에서 43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이집에서 시조 '기미년'과 수필 '나의 어머니', 시'서러운 해조'등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재개발로 철거위기에 있었으나 시민과 이상화 고택 보전위원회(공동위원장:윤순영 중구청장, 이상규 경북대교수)에서 100만인 서명운동을 개최하는 등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현재 이상화 고택을 1940년대 당시모습 그대로 복원, 무료개방 하여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서상돈 고택집터

서상돈은 천주교에 귀의한 가문출신으로 1859년 대구에 정착해 지물행상, 포목상으로 시작해 재벌로 부상했다.
1970년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하여 전국적인 운동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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